11월,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던 가을의 어느 날. 여느 해처럼 퀴디치 경기가 시작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올해부터 그리핀도르의 출전 선수 일부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헤이든 리브스는 자신이 무척 사랑하는, 눈이 시리도록 새파랗고 높은 하늘 아래에서 첫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그는 한동안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주장이 부르며 손짓하자 그제야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정신 똑바로 차려, 이번이 네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핀도르의 현 주장이자 추격꾼인 루카스 개리슨이 헤이든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이를 드러냈다. 그는 이제 자신보다 조금 더 커진 후배가 꽤나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재수없는 새끼. 아니, 사실은 그의 동생이 내년이면 3학년이 되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꼬마 개리슨이 수색꾼을 지망한다고 후배들이 떠드는 것을 들었으니까.
"뭐야? 무슨 일이야?"
눈치를 보고 있는 팀원들 사이를 조조가 비집고 들어오자, 루카스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홱 돌리며 경기장으로 앞서나갔다. 헤이든은 조조에게 별 일 아니라는 듯 조용히 손을 내젓고는 빗자루를 집어들었다. 실제로 별 일 아니기도 했다.
이기면 되는 거잖아.
1학년의 비행 수업에서 꽤나 두각을 드러냈던 헤이든은, 2학년이 되자마자 퀴디치 팀에 지원했다. 졸업을 앞둔 선배에게 그동안 모은 용돈을 탈탈 털어 구매한 빗자루는 꽤나 고물이어서 다루기 어려웠고, 성능도 좋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입단 심사에서 선배들이 마구잡이로 내던진 호두알을 모두 잡아채는 데 성공했다. 포지션은 자연스럽게 수색꾼으로 지정되었다.
'그 역할 이름은 수색꾼이야. 꼭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해, 리브스.'
그 때까지는 머지 않아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한 해가 지나도록 주전 선수로 선발되지 못했다. 그 빌어먹을 빗자루를 바꾸지 않는 한, 걔는 졸업할 때까지 출전 못 할 걸? 선배들이 낄낄대며 저들끼리 말하는 것을 듣게 된 날, 그는 혼자 호그와트의 하늘을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돌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열오른 머리를 식히지 못할 것 같아서.
'그깟 빗자루가 뭔데. 내가 이딴 빗자루로도 저 녀석들보다 잘하잖아. 그러면 된 거 아니야?'
치기 어린 마음으로 평소보다 과격한 훈련에 도전했던 날, 그의 낡은 빗자루는 결국 허공에서 힘을 잃고 추락했다. 그는 땅으로 떨어지면서도 끝까지 제가 잡지 못한 작은 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정식 선수가 되기 전까지는 스니치를 내어줄 수 없다며 선배들이 연습용으로 던져대던, 날개조차 달리지 않은 공은 추락하는 그의 손에 닿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지며 쇄골이 부러진 와중에도, 그는 그 사실이 가장 분했다.
한 번 사고를 친 빗자루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헤이든의 부상 역시 나날이 늘어갔다. 걱정 어린 눈으로 보던 알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최신형 빗자루를 선물해주었다. 이른 생일 선물이야. 그러나 일반적인 생일 선물의 가격대가 아니라는 것을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알았다. 그건 두 사람만의 약속을 위한 디딤돌이었다. 제대로 된 빗자루가 있으면 출전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날 훈련장으로 뛰어갔으나 돌아온 것은 선배들의 '그래도 안 된다'는 말 뿐이었다.
그 뒤로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텼다. 그동안 신장은 눈치 없이 자라서, 이제는 178cm에 도달했다. 수색꾼을 목표로 한다면 슬슬 위험했다. 수색꾼은 작고 날렵한 사람에게 적합한 포지션이니까. 루카스는 못마땅한 눈치로 혀를 차며, 헤이든이 이번 경기에서 스니치를 잡지 못한다면 팀에서 내쫓을 거란 말을 몇 달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마 동생 때문이겠지. 내년에 3학년인데 수색꾼 지망이라던가."
태연하게 털어놓은 비밀을 들은 다비데가 열받네. 상황 좀 공평하게 만들어줘? 라며 같이 화를 내어줄 때도 헤이든은 꽤나 평온해보였다. 처음 끼워보는 보호구를 점검 중인 지금도,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 없었다. 벼랑 끝에 몰렸대도 상관 없다.
'이기면 돼.'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 외의 돌파구는 찾지 않는다. 노란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헤이든, 많이 컸네?"
그리핀도르의 졸업생 케이트가 관중석 한 쪽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헤이든이 퀴디치 팀에 들어갈 당시의 주장이자, 뛰어난 파수꾼이기도 했다. 이야, 저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이만하지 않았나? 제 가슴 부근을 손으로 가늠하던 그녀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 옆에서 작년까지 그리핀도르의 수색꾼을 맡았던 마샤는 감회가 새롭다는 눈으로 제 후임을 쳐다봤다. 뛰어난 재능으로 늘 자신을 두렵게 만들었던 어린 후배를.
반면, 경기장에 나란히 선 루카스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헤이든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 새끼 눈빛 봐라. 3년이나 예비 선수로 지내게 했음에도 전혀 기죽지 않은 듯한 노란색 눈동자. 그 눈을 마주할 때면 괜히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어 불쾌했다. 빨리 치워버리든가 해야지. 쯧, 혀를 차며 그는 오늘의 경기에서 그리핀도르의 패배를 바랐다. 오로지 마음에 안 드는 후배를 내쫓기 위해서.
휘이익—!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휘슬 소리가 울리자 헤이든은 누구보다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를 둘러싼 선배들의 엇갈린 평가와 기대 속에서, 오직 골든 스니치 하나만을 눈에 담은 채.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폐부로 들어오는 숨이 지나치게 많아서 오히려 빠듯하게 모자란 기분.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온몸으로 부딪혀 올 때의 희열. 호그와트에 오게 된 것은 오직,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운명.
그래, 헤이든은 퀴디치를 운명이라고 여겼다. 처음 빗자루를 손에 쥐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그는 자신이 맞이한 운명에 최선을 다했다. 낡은 빗자루에서 떨어지던 때에도, 선배들에게 스니치를 허락받지 못했던 때에도, 다른 이가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끝없이 밀려날 때에도. 그는 한 걸음씩 꾸준히 다가갔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얄팍한 인내심을 어떻게든 늘려가면서. 그렇게, 조금씩.
지난했던 기다림 끝에, 그는 이제야 비로소 운명의 심판대 위에 섰다.
그리고 힘껏 손을 뻗어 눈 앞에 놓인 자신의 운명을 우악스럽게 거머쥐었다.
![[250815] ㅊ님 퀴디치 AI방지 ver..png](https://hr286.dothome.co.kr/data/file/log/d51820bab6c05b3e28019305546abfae_A47N5SM9_fdec2a16846a9d7f00dbdd2d004b321f19af7344.png)
퍼어억—!
곧바로 머리를 뒤흔드는 충격이 그를 덮쳤다. 날아오던 블러저를 정통으로 맞은 헤이든이 빗자루에서 추락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속출했다. 떨어지던 인영은 관중석의 구조물에 몇 번 부딪히며 속력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곧 그리핀도르 관중석 위의 천막으로 떨어졌다.
"…저 미친 새끼."
그 모습을 망원경으로 고스란히 본 케이트가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마샤의 표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쟤 지금… 블러저 오는 거 알았던 거죠?"
마샤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듯 말했다. 수색꾼 출신이라 상황을 더욱 잘 알았다. 헤이든 리브스는 지금, 블러저를 보지 못한 게 아니었다. 스니치를 잡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뻗고 망설임 없이 돌진한 것이다. 그걸 잡는 순간 제가 블러저에 얻어맞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진짜, 미친 놈인 줄은 알았는데 저 정도로 미친 놈인 줄은 몰랐다. 케이트 역시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5학년 될 때까지 출전 금지 시키라고 하길 잘했네. 저거 어릴 때 내보냈으면 지금쯤 어디 하나 망가졌어."
케이트의 말에 마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곧, 교수님들에 의해 천막에서 아래로 내려온 헤이든이 병동으로 이송되었다. 움켜쥔 손 사이로 스니치의 날개가 흔들렸다. 정신을 잃은 것이 분명한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다시 눈을 뜰 때까지 스니치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마샤, 잘 들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가 졸업하기 전까지는 자리 넘겨주지 마.
저 체구에 저런 식으로 경기하다가는 얼마 안 가서 팔다리가 아니라 목이 부러질 거야.
뭐라고 핑계를 대든 상관 없으니까 5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뜯어 말려.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