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폰스 무하 : 빛과 꿈

    예술은 민족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관람일 2026-01-24
    장르 전시
    감독 더현대 서울 ALT. 1
    출연 알폰스 무하

    리뷰

    2017년, [알폰스 무하 :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를 통해 보았던 알폰스 무하와 이번 전시에서 보게 된 알폰스 무하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정도로 전시의 목적이 달랐다.


    그동안 나는 알폰스 무하를 '아르누보의 거장'이라는 타이틀 아래, 미국에서 활발히 상업 작품들을 남긴 화가로 생각했다. 우아한 곡선들로 표현한 아름다움이 내가 느꼈던 전부였고, 그래서 알폰스 무하가 민족 화가라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전시는 알폰스 무하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 조금씩 슬라브 민족의 정체성이 담기기 시작한 것부터, 그가 민족을 위해 어떤 예술을 시작했는지까지 모든 서사가 그 안에 있었다. 고통받는 슬라브인들을 목격한 그는 더이상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림의 색채는 점점 어두워지고, 아르누보의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익숙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 그 전후로 보인 무하의 모습은 내가 아주 오랫동안 들어왔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내가 학교에서 배운 우리 민족의 저항 정신은 시와 문학 속에서 빈번히 보였고, 무하는 그것을 예술로 보였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민족의 뿌리에 진실해야 한다."

    그 문장 앞에서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최근 인스타그램으로 사진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떤 사진을 올려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사실 올리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었다.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가장 한국적인 색채로, 폭넓은 시간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국내의 유명 명소들은 대부분 오픈런이 많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는 결코 한적한 풍경의 사진을 찍을 수가 없으니까.

    때문에 그동안 해외를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들을 골라내던 중이었는데, 이번 전시를 보며 문득 손놓았던 프로젝트가 생각났다. 내가 그것을 하루 빨리 더 좋은 아이디어로 다듬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목소리가, 무언가 확신을 얻었다.

  • 도둑맞은 집중력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관람일 2026-01-21
    국가 2026-01-31
    장르
    감독 인문
    출연 요한 하리

    리뷰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내 짧은 글조차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집중력을 보면서 한탄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 역시 예전과 다르게 집중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남 말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SNS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본인을 ADHD로 규정하고, 그에 따른 팁을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원인이 틱톡 등의 숏츠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전부터 인류의 집중력이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었다면?


    나는 이 책이 핸드폰을 멀리하세요 따위의 말을 하는 평범한 자기계발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이 책은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책이다.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로 돈을 버는 대기업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자들이 계속해서 앱을 사용하도록 알고리즘을 디자인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집중력을 잃고,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그 모든 것을 '자제하지 못한 나'에게 화살을 돌린다. 게다가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부정적 이슈들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고 설계되어 있다. 인간은 본래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오래 보기 때문에. 이로 인해 우리는 점차 분열되고, 집중력과 결집을 잃은 사회는 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이 책은 제법 잘 쓰여졌다. 수면의 부족, 현저히 낮은 독서량, 테크 기업들의 주의력 조종이나 약탈 등 여러 가지 원인들을 낱낱히 파헤치고 그 모든 것에 관련 연구자들의 이름을 달았다. 그러나 이 책은 2023년에 이미 올해의 책으로 뽑일 만큼 많이 팔렸으나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러한 이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전에 자멸할까. 점차 자국주의로 돌아서는 강대국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는 전쟁 소식, 그 사이의 패권 싸움. 당장 전 세계가 협력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인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거나 실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이슈에 관심을 잃고 누군가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하며 미루고 있다. 눈 앞의 이익만을 보는 이러한 현상은 분명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슈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파도시집선 014 새벽

    나를 여밀수록 당신은 찬란한 아침의 곁으로
    관람일 2026-01-01
    국가 2026-01-03
    장르
    감독 시/에세이
    출연 임나하 외 55인

    리뷰

    새벽과 관련된 여러 작가들의 글이 실려 있는 얇은 시집.

    '영원'에 이어 두 번째로 읽어본 파도시집선인데 앞으로 꾸준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특히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



    p.14 / 여름 새벽 - 사백

    난 새벽이 궤멸했으면 해요 언니

    고작 서투른 낭만에 설레긴 싫어



    p.17 - 18 / 너의 시간 - 열망

    네가 사라진 세상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내가 나중에 떠난 뒤에

    네 옆에 묻지 않을까 봐

    한참 전 일이라고 잊을까 봐


    네 이름을 유언장에 빼곡히 쓰는 일

    내 인생을 다 헤집어도

    더 의미 있는 존재는 없다고 단언하는 일

    누군지 모를

    나의 마지막을 집어 든 사람에게

    부탁하고 또 부탁하는 일



    p.24 / 이곳에 있는 시티들을 다 돌아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살자고 했다 - 유연

    나는 너에게

    이곳에 있는 시티들을 다 돌아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살자고 했다

    살려면 살 수 있는 것처럼

    동전 비린내가 나는 손을 숨기고



    p.37 / 희망행 탈선 주의 - 이유로

    그야 나는 밥을 먹는 좀비라서 일을 하는 좀비라서 울고 웃을 줄 아는 좀비라서 꿈을 꾸던 좀비라서 아니 그땐 사람이었구나



    p.47 / 회자정리 - 이서록

    너무 그리워지기 전에 다시 만나

    잘 자

    사랑해



    p.50 - 51 / 스노우볼 - 지원

    조금은 서둘러 사라지려는 것들을 쥐어본 적이 있어

    구원이라는 말은 유치했고

    다음 생에서 보내는 안부는 필요 없었지

    받아놓고 돌려주지 못한 약속이 싫어

    새끼손가락을 내어줬었는데

    거기까지 가고 보니 단번에 알게 되었지


    남겨진 것들의 마음

    미리 사라지거나 서둘러 떠난 것들은 모르는



    p.52 / 야광타투 - 오연우

    잠들기 전 너의 습관은 침대 속에서 툭 불거진 나의 척추를 점자처럼 신중하게 어루만지는 것 읽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숨길 것이 많은 나는 몸을 웅크렸다 그럴수록 뼈가 울렁이며 더 뾰족하게 솟았다는 건 나중에 안 사실이다 영악한 애인이 끝내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p.54 / 고백 - 이제

    우리는 좀 더 이어졌어야 했다

    신을 믿었어야 했다

    마치 멈춰 버린 시계처럼

    작열하는 태양

    번져 버린 핏빛 수채화

    나의 세계는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p.68 / U-485, 흑발의 천사 - 강랑

    가자, 네가 영원을 두고 온 곳으로



    p.76 / 밤사이 당신에게 - 백우미

    여전히 고집스럽게 스러지는

    당신을 사랑하며



    p.90 / 청춘 - 백건영

    나였던 것들을 길바닥에 조금씩 흘리면서

    다시 주울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았었는데



    p.103 / 잘 자 - 김리을

    나는 언제까지고 나를 쫓아올 거야

    절대로 도망칠 수가 없어

    나는 나를 떼어낼 수 없어

    내 몸 내 정신 내 비참함

    모든 게 영원히 내 뼈 안에서 굴러다닐 거야